
국내에서 유일한 여성 빙하학자의 빙하 투쟁기
침묵하는 빙하 곁에서 들은 얼음 조각의 증언
★ 이명현 이원영 강력 추천
지구 역사에 대한 두 가지 독법
빙하학자 대 기후 회의론자
사람들은 ‘빙하가 녹고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 가라앉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의 감각을 회복한다. 반면 자명하다 못해 이제 지루하기까지 한 이 사실에 여전히 처음처럼 놀라고 심지어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빙하학자다. 빙하학자는 지질학자가 지층에 새겨진 역사를 읽듯이 수십만 년 전에 생성된 빙하의 층서를 읽는다. 층층이 포집된 당시의 눈, 에어로졸, 사막 먼지뿐 아니라 심지어 최근에는 그린란드 빙하 코어에서 백두산 화산재가 발견됐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빙하학자는 누적된 단서들을 조합해 당대 기후 사건을 해석하고 지구 역사를 파헤친다. 그리고 이는 미래 기후를 예측하는 데에도 주요한 기초 자료로 쓰인다.
지구의 역사로부터 미래를 추정하는 사람 중 현재의 기후위기란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기후 회의론자들이다. 지구의 수십억 년 역사를 들먹이며 지구란 원래 뜨거워지기도 차가워지기도 했고, 게다가 지금은 다섯 번째 빙하기를 지나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 앞에 서면 우리가 매년 체감하는 기록적인 폭염과 이상기후에 따른 징조, 재난의 풍경은 사소해지기만 한다. 따라서 귀와 눈을 닫게 하는 체념과 선동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더 치밀하고 적확한 분석과 현장에서 밝혀낸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빙하학자의 시선은 지구의 역사에만 고정되지 않고 언제나 현재로 돌아온다. 전 지구적인 범위에서 기후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추적하고 오염되지 않은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극한 환경까지 밀고 들어간다. 빙하학자가 현장에서 습득한 지구 역사를 읽는 방법이다.
이 책은 원시 지구 이후 빙상이 형성되던 시점부터 농업 발달과 산업화 등 인류 활동이 본격화되던 시기를 지나 핵실험이 만연했던 1945년 그리고 오늘날까지, 인류가 전 지구적으로 영향력을 떨쳤던 시간을 가로지르며 빙하의 언어를 번역한다. 지난 80만 년을 기억하는 남극 빙하 코어는 냉정하게 말한다. 지금의 인류처럼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급격한 속도로 배출했던 존재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2100년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800피피엠을 웃돌 것이고 그 수치는 3390만 년 전 그린란드에 빙하가 없었던 때와 맞먹는다. 기후위기 시대의 책임자로 빙하는 인류를 지목한다. 지구의 수십억 역사로 눈을 돌리고 냉소할 때가 아니라 우리부터 똑바로 마주할 때다.
한편 빙하가 다 녹아 사라지면 빙하학자는 어쩐단 말인가. 저자는 빙하에 자신의 생업이 달렸다고 말하며 기후위기를 실질적인 생존의 위기로 체감한다. 그는 빙하 코어에 포집된 과거의 공기 방울을 그러모아 이산화탄소를 분석하고 고기후 연대기를 쓴다. 그래서 그에게 빙하가 녹는 사태는 조선왕조실록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녹아서 층서가 뒤죽박죽 섞인 빙하를 연구하다가 심전도 모니터의 일직선이 그어지는 듯한 위기를 감지한다. 층서가 균질해진 빙하란 사망선고와도 같다. 그러므로 그는 거듭 강조한다. 지금이야말로 무엇이든 해야 할 때다. 그가 제시하는 실천의 세목은 일상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델모트 박사의 “노력을 모으면 우리가 지구에 배출하는 온실기체의 20퍼센트를 감축할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변화를 추동하는 믿음이 우선해야 한다. 저자의 말로 하자면 ‘연대에서 비롯한 희망’이 필요하다. 기후 회의론자의 방관과 체념에 맞서는 저력을 일상의 실천에서부터 발견하자는 말을 빙하학자만큼 절실하고 진실히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이 책은 빙하학자가 차가운 빙하에서 뜨겁게 길어올린 기후위기 시대를 향한 제언이자 한 과학자의 희로애락이 흐르는 진솔한 고백이기도 하다.
목차
프롤로그 | 빙하의 냄새를 맡는 사람1부 빙하는 지구의 과거를 알고 있다지구, 그 영원한 신비지구에 남은 지문한국에 빙하 코어가 있나요?세상의 끝, 그린란드와 남극대륙둘리와 빙하의 상관관계이산화탄소의 하소연위스키 한 잔이 세상을 바꾼 사연이산화탄소가 그렇게 이상한가요?바닷속 컨베이어 벨트지구가 뜨거워진다는 새빨간 거짓말인류가 지구에 무해했던 적이 있다핵실험을 하자 빙하가 우리에게 건넨 말캐나다 로키산맥에 오르다2부 빙하학자, 그린란드 빙하를 만나다여기는 그린란드, 빙하 앞에 있습니다그린란드 빙하 위에 서다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얻는 것사람의 인연은 알 수 없는 법여성 과학자로 살아가기전쟁과 그린란드빙하의 엑스레이를 찍다매일 밤 연구를 그만두는 꿈을 꿨다7월의 핼러윈 파티안녕, 그린란드미션 임파서블3부 과거의 빙하와 미래의 지구, 그리고 현재의 빙하학자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남극 탐험의 꿈여자의 친구는 여자행복하지 않습니다동료들과 연대하기나에게 쓰는 편지에필로그 | 빙하학자로 평생 살아가기미주

글쓴이 : 신진화
지구의 과거가 궁금한 빙하학자. 빙하에 기록된 기후 기록을 우리의 언어로 읽어내는 지구 언어 번역가. 대한민국에서 활동 중인 유일한 여성 빙하학자로, 고기후와 빙하학을 연구하고 있다.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를 수석 졸업했으며, 서울대 대학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알프스대학과 IGE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캐나다 앨버타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 극지연구소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2023년 그린란드 EastGRIP 국제 공동 심부 빙하 시추 프로젝트 현장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주요 논문으로 「19만~13.5만 년 전 발생한 빙하기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천년 규모 변동」 「초기 홀로세(11.7~7.4000년 전) 기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천년 규모 변동」 등이 있다. 오마이뉴스와 틴매일경제 등의 매체에 글을 써왔다.